본문 바로가기
오늘의말씀

요한복음 8장 32절 / 진리를 알라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24. 9. 27.
728x90
반응형

요한복음 8장 32절 / 진리를 알라 /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8장 32절 (요한복음 8:32 /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왜 세상은 기독교를 배척하며 핍박할까요?

역사 속에서 불교나 힌두교나 이슬람 같은 다른 종교들이 핍박을 받았다거나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2천여 년 역사 속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은 지금까지 7천여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유엔 산하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에 의하면 지금도 매년 10만여 명이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모든 종교가 다 통합을 하면서 기독교는 배척을 합니다. 배척할 뿐 아니라, 공격하고 탄압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면, 세상은 기독교를 배척하거나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참 진리이시기에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온갖 핍박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님과 똑같은 박해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이라고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요 15:18~20)



그러나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 5:11~12) 말씀합니다.



진리는 결코 타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진리는 타협도 되고 연합도 됩니다. 또 수정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타협도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신데 무엇을 타협하며 무엇을 수정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타협할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참 성도는 세상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도 없고 타협하지도 않습니다.



영국 북 스코틀랜드에는 청교도들 1,500명이 순교한 감옥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을 외치며 영국 국교인 성공회에 대항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국교에 대항하다 모두 잡혀 그 감옥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은 울타리만 있고 지붕은 없었습니다. 또 그 울타리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뛰어넘어 도망을 갈 수가 있는 낮은 울타리였습니다. 



영국의 국왕은 감옥에 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먹을 것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다. 대신 너희가 주장하는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라는 그 신앙을 부인하고 버린다면, 너희는 언제든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그 담을 넘어가지 않았고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그 혹한의 눈을 맞으며 신앙을 지키며 다 순교를 했습니다. 



과연 그들이 지혜롭지 못해서 바보스럽게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일까요? 결코 아니지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진리시요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그 진리에 기꺼이 자신들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주님께선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진리를 믿는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면 이 세상과 결코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란 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세상은 자기들과 신분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도 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산다면, 세상은 우리를 욕하지도 핍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오히려 세상과 친구가 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용, 타협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모나지도 않고 구별되지도 않게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 부정도 긍정도 아닌 중간을 사는 것, 세상을 잘 사는 참 지혜로운 방법처럼 보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옳으면 ‘옳다’ 하고, 아니면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한 것이라"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마 5:37)



기독교 신앙에는 중용이란 것은 없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신앙에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돈과 재물)도 사랑하는 것은 없습니다. (마 6:24)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그 진리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참 자유롭게 하고 하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