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말씀

생명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 / 사도행전 20장 24절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19. 12. 9.
728x90
반응형

사도행전 20장 24절 (사도행전 20:24 /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에 가면 하나님의 그 사랑에 붙잡혀 한국에 십자가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한국에서 생을 마친 선교사들의 묘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140여구의 선교사들의 묘가 있는데, 그중 60구는 선교사들의 자녀들인 어린이 묘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인 조선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러 온 그들 부모를 따라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살던 그 시절, 약국도 병원도 없어 홍역으로, 장티푸스로 여러 가지 질병으로 그들은 어린아이로 그들의 생을 다하였습니다. 오직 그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고 대한민국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1886년 9월 12일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에서 성경을 전해주고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한국에 복음이 전해졌고, 이제는 오히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 한국 선교사들이 들어가 가장 힘 있게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선교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 직전 박춘권에게 성경을 주었는데 그는 그 성경을 조카 이영태에게 주었고 이영태는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후에 죤 로스 선교사를 만나 구약성경을 함께 번역하였습니다.

또 토마스 선교사가 최치량이라는 12살 소년에게 성경을 주었는데, 그는 그 성경을 박영식(평양성 관리)에게 전해주어 그가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그의 집은 널다리 교회가 되었고, 후에 평양 장대현교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조선이 개화되고 평양에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들어와 이기풍 목사를 길러 내었고 마펫선교사 넷째 아들은 대구 동산병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존 로스 선교사는 영국 웨일스 하노이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1872~1910 중국 사역) 메켄타이어 선교사 함께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를 만나 조선말을 배워 4복음서를 번역하여 한국에 전하였습니다.

1885년 4월 15일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함께 제물포 항에 들어와 한국에 본격적인 선교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장로교에서 파송을 받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정동에서 시작한 가정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지금의 새문안교회가 되었고 그가 세운 경신학당이 지금의 경신 중. 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또 그를 통해 많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는데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장로와 도산 안창호 등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에 다니며 한국을 알렸고 한국의 독립과 성경 번역과 교육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 감리교 교단의 파송을 받은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7년 벧엘교회(정동제일교회)을 세우고 전도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성경 번역에 크게 힘썼습니다. (마태, 마가, 고린도전후서를 번역) 그리고 배재학당(오늘의 배재중. 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을 세워 교육에도 힘썼으며,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목포 앞 바다에서 다른 배와의 충돌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1885년 5월에 미국 감리교에서 의사 아들과 함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온 최초 여성 선교사입니다. 그는 이화학당 (지금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대학교)을 세워 여성교육과 의료와 교회 개척 등에 힘썼으며,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과 한국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 등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이후 약 1,4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는데, 이들 모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그 사랑에 붙잡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가장 가난한 나라 조선에 와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자녀들을 잃고 선교지에서 생을 마친 그들의 핏값으로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