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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말씀

살아 있다는 것 / 요한일서 5장 12절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1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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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요한일서 5장 12절 (요한일서 5:12 /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살아 있다는 것은 반드시 반응이 있습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아프면 아야! 하고 분명한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살아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사와 감격과 기쁨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이 깨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주님을 향해 “아멘”을 하지만,

영적으로 잠자는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주는 죄 사함의 은총과 구원의 감격을 못 느끼기 때문에 십자가가 그에게 능력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을 말해도 무덤덤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해 내는 도구와 같습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흔들리듯이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의 은혜가 스치고 지나가면 분명한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내 영혼을 스치고 지나가면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시작됩니다.

그 떨림이 내 입술의 찬송으로, 감사로, 헌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벧전 4:11)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은 십자가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복음)는 나를 가만히 있게 하질 않습니다.

이 은혜(복음)을 자랑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너무 귀하고 소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알고 십자가도 안다고 하면서도, 신앙생활이 무덤덤한 삶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교제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종교생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아무런 느낌도 기쁨도 없이 삽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성령이 주시는 신앙의 기쁨이 무엇인지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일상의 생활에서 그 사람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을 거의 잊고 삽니다.

주일날 교회 가서 한 시간 예배만 열심히 드릴뿐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는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 안에 살아계시는데, 나는 나요,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별거 중입니다

혹시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영적인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에 반드시 움직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복음에 대한 반응이 내 삶에서 반드시 일어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과 감사가 솟아 옵니다.

“주님”하고 부르면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왠지 모르지만 모든 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삶의 변화가 없다? 그분이 지금 성령으로 오셔서 내 안에 사시는 데도 기쁨이 없다?

이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인의 최고의 관심사는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인 것 같습니다.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일 중요하지요.

육체적 건강이 소중하다면, 영원한 생명을 잘 간직하고 사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요?

그렇다면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십시다.

신앙생활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을 잘 때까지 주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십시오.

주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심을,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사십시오.

“주님 지금 나 보고 계시지요? 나 여기 있습니다.” 순간순간 고백 드려보세요.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서 함께하고 계심이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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