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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말씀

죽음이란? / 요한계시록 14장 13절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1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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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장 13절 (요한계시록 14:13 /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감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데 왜 암이나 에이즈라는 병은 두려워할까요?

암이나 에이즈는 곧바로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그것은 그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죽음 이후에 있을 사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 않으려고 가진 애를 쓰는 것을 봅니다.

그럼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부모를 통해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평생 살다가 늙으면 당연히 죽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사들은 그 사람이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뛰지 않으면 사망을 선고합니다. 그러면 유족들은 그 시신을 땅에다 장사를 지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죽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정한 죽음이 무엇이며, 그 죽음이 어디서 왔으며, 사람이 왜 죽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을 죄라고 말씀하며,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 없이 사는 모든 사람을 죽었다고 말을 합니다.

비록 호흡을 하며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할지라도 죽은 자라고 말을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을 주시며,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는 네 임의로 다 먹되 동산 중앙에는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합니다. (창 2:16~1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사탄)의 말을 더 소중히 여기고, 피조물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듣고 피조물의 자리를 이탈해서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 모든 인간들은 자기가 자신의 인생에 왕이 되어 모든 일을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선한 것이고 손해가 되면 다 원수로 여기지요.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므로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을 의지 않고 사는 것이 죄이며, 그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결국 마귀와 함께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그것이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이 죽음이 항상 무서운 권세를 가진 왕으로 나타납니다.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야! 너 죽고 싶어?” 소리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 그 죽음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 앞에 벌벌 떱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 고달프고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말을 듣고 범죄 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하심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창 3:1~19)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안다면, 그리고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죽음은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안식”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죽음이 절망으로 보이지, 안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이 있으면 죽음을 영원한 세계를 향한 소망으로 여기지만, 믿음이 없으면 죽음이 곧 두려움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나그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히 11:13-16)

성도가 죽으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시편 기자는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시 116:15)

성도가 죽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암 말기 같은 죽을 병이 걸렸다가 고침을 받고 다시 살아나면 다들 감사하고 기뻐해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도리어 애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죄악된 이 세상을 떠나 사랑하는 주님을 친히 눈으로 뵈옵고 만나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지요...

성도의 죽음은 육신의 몸을 벗고 약속된 부활의 몸으로 새롭게 입고 영생에 이르는 가장 복된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이르는 성화의 극치요, 신앙의 절정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행복이요 기쁨이며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죽기를 그토록 그토록 소원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1~23)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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