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24절 (사도행전 20:24 /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
이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나 하나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 복음은 가짜이든지, 아니면 내가 가짜 신자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주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주님을 만난 후 그는 평생을 주님의 십자가를 전하다가 참수형을 받고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왕에게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나나는 전 재산을 교회에 다 바쳐버리고 평생을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의사 누가는 그의 직업을 버리고 건강치 못한 사도바울을 돌보며 평생을 그의 그림자가 되어 평생을 함께 복음을 전하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백 년을 땅속에서(카다콤) 살다가 로마의 성도들, 터키의 카파도기아 성도들, 부패한 가톨릭에 대항해 종교개혁을 일으켜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세운 루터, 칼빈, 존낙스 등 수십만 수백만 성도들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순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이 들어가고 전해진 곳곳마다 죽었던 생명이 살아나고 살아나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면,
개인이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살고, 도시가 살고, 한 나라가 살아나는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어떤 병자도 누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중풍병자도, 문둥병자도, 귀신들린 자도, 장님도 모든 병자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죽은 자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무덤 속 나사로도, 관속에 있던 외부의 아들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능력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바로 생명이요
우리를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생명도 부활도, 영광과 존귀와 권능과, 능력과 권세와 힘과 부와 지혜도, 영원한 우리의 장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반드시 그의 삶과 인격이 변화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해 갈수록 영혼이 강건해지며 삶의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서로의 관계가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게 됩니다.
짜증과 원망, 분노, 불평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온유해집니다.
점점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겸손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변화 속에 가정이 회복되고 서로 가지고 있었던 상처와 아픔의 관계들이 회복됩니다.
가정에서 잃어버렸던 사랑과 웃음과 대화와 격려와 축복의 언어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죄에서 해방되고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이전에 즐기던 세상 것들이 재미가 없어지고
이제 주님을 사모하게 되고, 기도하는 일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늘 기쁨으로 가득한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 중심에서, 이웃 중심으로 바뀌어 가게 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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