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장 27절 (누가복음 14:27 /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는 수 백, 수 천명의 사람들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각종 질병에서 고침 받기 위해, 또 떡을 얻어먹고 배부름을 얻기 위해, 어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신비한 이적과 기적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예수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이심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오직 자신들의 유익을 얻기 위해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그 군중들을 향해 제자(그리스도인)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는 길은, 너희가 소중히 여기는 너희 부모와 너희 처자와 형제, 자매와 더 나아가 너희 목숨까지 미워하며 너희 모든 소유까지도 버리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14:25~27)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패턴을 바꾸는 것이 없이, 또한 아무런 고난과 고통과 손해도 없이 단순히 예수님만 영접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길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와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고 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길은 자신의 유익과 형통을 위해 사는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고 미워하고 버리면 제자가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만 사는 존재임을 알고 믿는 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으로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교리적 사실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고 실제 하나님이 내 인생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셔서 이제 하나님이 나를 성전으로 삼아 함께 영원히 사시는 내 생명과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은 지금 예수님이 자신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러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단지 예수님에게서 얻을 복만 생각하며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과 같이 오직 자신들의 복과 유익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병 고침 받고 또 만사형통하고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믿음의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버리고 죽어야 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길이요,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미움을 받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의 많은 교회들은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가 참 적습니다.
그저 솜사탕과 같은 달콤한 복음을 제시하며, 늘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의 믿음을 가르치며, 우리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믿음을 가지고 살면 축복을 주시고 형통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쳐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고난과 함께 치러야 할 대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눅 9:23~25)
여러 사도들도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당연히 고난이 있음과, 복음을 위해 그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해 수없이 말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3)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롬 8:17)
사도 베드로 역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는 자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4:12~16)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내게 좋은 일만,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을 기대하며 사는데 신앙의 삶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깜짝 놀라고 당황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셔서 늘 넘치는 복을 주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연단하시고 훈련하신다는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벨은 형의 미움을 받고 살해당했고, 요셉은 아무 잘못 없이 노예로 팔려 갔으며,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고 사자굴에 던져졌고,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고, 사도바울 역시 예수님을 전하다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을 당신의 품에 영원히 두시기 위해 이렇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힙니다. 단지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며 고통을 당합니다.
그들이 만일 십자가를 살짝 내려놓고 예수를 모른척했다면, 아무런 손해나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하나님의 성도 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의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누리게 될 하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믿음으로 살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다시 오셔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에게 주실 영원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벧전 1:7)
오늘도 주께서 주신 그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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