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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말씀

하나님께 속한 증거 / 요한일서 4장 7절 ~ 11절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19.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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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7절 ~ 11절 (요한일서 4:7~11 / 요일 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함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살까요?

그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사는 불신자들의 형통은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친구들은 화려하게 너무 잘 사는데,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나는 늘 왜 이 모양인가 하고 불평이 되는 것은,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늘에 시민이 되어 성령 안에서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모르니까 그들이 부럽기만 하고, 지금 나 자신의 형편을 보며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형편이 너무 어렵고 힘이 드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주께서 언제 우리를 사랑했습니까?”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지금 세상의 어려움 때문에 나의 사랑을 의심하느냐,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란다. 너희 형편이 좋고 잘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축복해 주셨다고 말하고, 형편과 상황이 나쁘고 어려우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옳은 신앙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한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업이 잘되고 형편이 좋으면 서로 사랑한다고 하고, 형편이 좋지 않고 상황이 나쁘면 이혼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절망해 할 때, 아내가 병들어 있을 때, 서로가 용기를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일 것입니다.

내 형편이 좋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고, 형편이 나쁘면 하나님이 언제 나를 사랑했습니까? 하고 시험에 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 3:17~19)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신앙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늘 우리의 신앙이 변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하박국 선지자처럼 감격스러울 때 참된 예배와 참된 헌신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을 때, 그들은 병들고 눈멀고 다리를 저는 돈도 안되는 마른 양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매일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종교의식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있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말 1:6)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으면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인이 될 뿐입니다.

신앙의 기쁨도, 소망도, 감격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몸을 불사르는 헌신을 하고, 선교를 하고, 오케스트라를 갖춘 화려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면 한 종교의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저 외식과 위선이 될 뿐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있으면 진심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께선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희가 나를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교회 촛대를 옮기겠다"라고 엄히 책망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계 2:4~5)

우리가 몸부림치며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출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합니다.

십자가에서 시작하지 않는 사랑은, 비록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를 위한 자기 사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증거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증거가 바로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의 제물로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을 마땅히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께 속한 증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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