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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말씀

아모스 4장 12절 ~ 13절 / 주님 만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 오늘의 말씀

by 행복한 폴리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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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4장 12절 ~ 13절 / 주님 만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 오늘의 말씀
아모스 4장 12절 ~ 13절 / 주님 만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 오늘의 말씀

아모스 4장 12절 ~ 13절 (아모스 4:12~13 / 암 4:12~13)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19로 약 400만 명이 죽고, 수 억 명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14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온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지금과 같은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창궐하여 유럽 인구의 약 절반(2억 명 추산)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여러 차례의 흑사병 창궐로 인해 4백만에서 7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 중 널리 알려진 런던 대흑사병(1665년–1666년)은 엄청난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희생을 당했습니다.



영국의 토마스 빈센트 (1634~1678) 목사의 “런던에서 들린 하나님의 무서운 음성”이라는 책에 보면 런던에서 일어난 대화재와 전염병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그 위험 가운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며 교회로 모여들었는데, 그때 교회 강대상들은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국 국교 목사들이 자신도 그 전염병에 옮아 죽을까 봐 다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국 국교로부터 핍박을 받고 숨어 지내던 종교개혁을 부르짖던 하나님의 신실한 목사들은 그 은신처에서 나와 도망가 비어진 강대상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며 교회로 모여드는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에겐 주일이 따로 없었습니다. 

매일이 주일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나, 설교를 듣는 그들 모두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회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안 했고 목이 쉴 정도로 큰소리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는 정말 죽음의 무덤들이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모 형제들이 어제도 죽었고, 오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너무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로 죽음의 고통이 없는 영원한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며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염병을 통해 진짜 믿음으로 사는 참 자기 백성을 찾으셨습니다.



그들은 정말 세상의 덧없음을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일분일초가 온 세상을 합친 것보다 더 귀했습니다. 



그들이 그 상황 가운데서도 그래도 나는 돈이 좋아, 넓은 정원이 있는 멋진 집이 좋고, 권세가 좋아 그랬을까요?



이런 상황 가운데서 목사들은 어떤 설교를 했을까요?

복받으라고 외쳤을까요? 죽기 전에 성전 건축하여 하늘에 상을 쌓자고 했을까요? 

이런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설교를 하면 안 되니 위로의 메시지만을 전했을까요?



그 목사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안 했으며, 그들의 칭찬과 박수갈채도 원치 안 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전심을 다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참생명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목사는 자신의 설교를 듣는 회중들의 얼굴을 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정말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말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 들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목회자들은 전심을 다해 설교를 했고, 듣는 회중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날마다 모여 말씀을 경청했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오늘의 교회들에게 던져본다면 어떨까요?



그때는 그들이 죽음 앞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기에 오직 십자가만을 설교하고,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그렇게 설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때는 그들이 죽음 앞에 있었기에 진지하게 설교를 들었지만, 오늘에는 진지하게 듣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때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기에 매일 모여 하루 종일 설교를 들어야 하고, 지금은 주일날 1시간 예배 중 30분만 설교를 들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물론 그때는 사람들의 수명도 짧았고 전염병 때문에 빨리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때에 비해 오늘의 사람들이 수명이 조금 길어졌을 뿐, 죽음의 문제도, 영원한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똑같습니다. 영생과 구원의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의 설교는 열렬하지도 긴박하지도 않으며, 또 절박하게 들리지 않을까요?



또 듣는 우리는 왜 그때 그 성도들처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또 진지하게 듣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것들에 대해 소홀히 여기며 진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주님 만날 준비는 되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죽음에서 자유하십니까?



내일도 산다는 보장은 받으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죽음을 준비하며,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두려운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내가 그토록 사모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문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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