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2장 17절 (마가복음 2:17 /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기독교인의 첫 출발은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는대서 시작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결코 주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의사를 찾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의사를 찾아가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죽을 병이 들었다고 느끼고 깨닫는 사람은 즉시 자신을 고쳐줄 의사를 찾아 병원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자신이 건강을 잃어버리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 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주님께서는 나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땅에는 죄인들이 없습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땅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는데 (롬 3:10/23),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다들 “내가 왜 죄인이냐?"라고 말합니다. 다들 자신은 나름 착하게 산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의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의인들로 가득한 이 땅에 죄인들을 구원하러 의사로 오신 예수님은 잘못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럼 교회는 어떤가요?
교회는 분명히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인데, 어찌 된 일인지 교회 안에도 죄인들은 없고 의인들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성수주일 잘하는 의인, 십일조와 기도 잘하는 의인, 봉사와 구제 잘하는 의인, 전도와 선교 잘하는 의인, 교회 안에는 모두 하늘에 가서 상 받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를 자랑하는 의로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 교회들마다 예수를 자랑하기보다는 교회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해외 선교 잘하는 교회, 교육과 전도 잘하는 교회, 교회 예산의 절반을 구제와 선교에 힘쓰는 교회, 제자훈련을 잘하는 교회 등등 말입니다.
그리고 또 교회 안에는 왕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요. 고구마 전도왕, 기부왕, 간증 왕등 교회 안에도 죄인들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의인들로 가득합니다.
혹간 말로는 죄인이라고 하는데, 누군가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을 조금하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 (마 16:24)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갈 2:20)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우리가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하여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요 16:8)
따라서 성령이 충만하다 말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총 속에 살면서도 죄를 좋아하며 죄에 머뭇거릴 때마다 우리를 엄히 책망하시는 성령님께 민감히 반응하며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즉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를 통해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고 죄를 즐기며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자신을 보면서도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야말로 지옥 가야 당연한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할 때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용서란 없는 것입니다.
은혜 역시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하여 절대 절망하며 “나는 정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절망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임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여전히 죄를 즐기며 사는 자신을 철저히 회개하고, 날마다 주님의 용서의 기쁨과 하늘의 은혜를 누리며 천국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하며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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